지금의 광화문이자 당시 광화문 거리에 있던 중앙청 건물.
중앙청 건물의 돔이 저곳이 광화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원래 흑인은 미군에 참여를 못했었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당시 '흑인' 문제 자체가
남북분열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흑인의 전투 참여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북군은 흑인을 전투병으로 고용하기도 하였다.
1차,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병력의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흑인의 뛰어난 신체적 능력이 더해져 핵심 전투원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 당시 참여한 흑인들의 병과는 보잘것 없는 병과도 많았다고 한다.
흑인병사들을 본 한국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폐허가 된 기찻길에 남겨진 고아들의 모습...
어린이들에게 말을 거는 호주 병사.
1950년대의 서울 모습이라고 한다. 전쟁 전인지, 복구된 전후인지는 출처 불명확
전쟁중 포로로 잡힌 중공군. 중공군의 특징은 솜털옷을 입었다는 것.
저 솜털옷은 매우 따뜻하여 비슷한 개량형을 한국군이 만들기도 했고
또한 중공군의 옷을 뺏어 입기도 했다고 한다. 깔깔이를 생각나게 하는 두툼한 포스.
대동강 다리라고 나온다. 남쪽으로 피난가기 위한 피난 행렬. (서울 사진인줄 알았으나 대동강 인듯)
동생을 안고 있는 누나의 모습. 50년대 즈음 서울 사진이라고 한다. 뒤로 보이는 '양복점'의 간판이 인상적이다.
전쟁 중 서울 시내 모습. 서울탈환 중 작전 모습.
시민들이 저 안으로 북한군이 숨어들었다는 제보를 하여 출동한 군인의 모습.
뒤쪽으로 기관총을 준비하는 사수의 모습이 보인다.
쓰러진 남편에 긴장한 여인의 모습. 그리고 그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노인...
긴장감, 고통, 슬픔이 느껴진다...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미군 전차의 모습.. 우측 병사들의 모습을 볼 때, 작전중인 것으로 생각된다.
전차가 피격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임.
저 소년들이 우리들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
모든것이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년의 모습이 전쟁속 희망을 싹트게 했다.
집에 필요한 물을 길어가는 어린아이. 아이의 어깨가 더 무거워 보인다.
유명한 사진, 동생을 등에 업고 있는 소녀... 무슨상황인지 잘 모르는 업힌 소년의 모습..
전쟁중 서울 시내 모습. 모든것이 무너지고 부서져 상가건물이 피폐하게 변했다.
상가에 '평화'라고 써 있는 것이 이 전쟁의 상황과 대조된다.
끌려가는 포로, 혹은 부역자들. 정확한 사진설명은 부재...
긴급상황
끌려가는 남자
1954년 지쳐있는 미군을 위로해주러 본토에서 날아온 '마릴린 먼로' 매우 유명한 사진이다.
6월25일은 잊어서는 안 되는 날!!!
상기하자 6.25~! 외치며
반공을 국시로 삼아
오늘의 평화를 지켜왔는데
어느날 반공은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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