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03.22. 강화나들길 2코스 - 호국돈대 길

최윤영(연산동) 2018. 3. 23. 12:06

 

 

   * 2코스 호국돈대길 표식판


   * 화도돈대앞 강화나들길 표식판을 배경으로 ~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 돈대길 -18.03.22.

(갑곶돈대-초지진)


도보구간 : 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손돌목돈대/용두돈대

               /광성포대)-덕진진-남장포대-초지진

도보거리 : 약 17 Km (탐방시간 : 5시간50분 예상/실 4시간50분 소요)

교 통  편 : > 2호선 합정역5번출구 중앙버스승강장 (좌석3000번 강화직행)

               < 초지대교 (일반버스 70번) -마전역하차(인천지하철2호선)-검암역

               * 소요시간 1시간20분. 교통카드 환승 가능.


course2. 호국 돈대길코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써 해안가 철조망은 남북대립의 상징물이며

5진7보53돈대의 옛 군사적 방위시설을 잇는 국방유적인 호국 돈대길


* 2코스 출발 통로

* 출발에 앞서 ~


* 2코스에서 돌아본 갑곶돈대 팔각 이층정자 이섭정.

* 해안길에 세워진 이정표

* 해안가에 설치한 강화나들길 표식을 배경으로 ~


* 더리미 포구 시가지


* 더리미 포구





* 나들길의 각종 알림표지판






* 용 진 진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진보의 설치는 효종 대에 시작되었다. 봉림대군 시절 강화에서 직접 병자호란을 겪었던

효종은 보장처로서의 강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진보 설치에 적극성을 보여 8개의 진보를 세웠다.

용진진은 1656년(효종 7)에 설치됐다






* 용 당 돈 대


* 용당돈대 안에 심어져 있는 나무 





* 해안가 곳곳의 쉼 터. 


* 화 도 돈 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안에서 경계근무를서며 외적의 척후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 갑 문


* 화도돈대의 나들이길 표식



* 오두돈대를 바라보며



* 오 두 돈 대



* 갯벌 풍경

* 강화 외 성.

*  일부 복원된 외 성.


* 바닷가 갯벌의 예술작품








* 해안길에서 광성보로 나서는 표식문.




* 광 성 보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효종 9)에 설치됐다.

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오두정포대를 관할하였다.
1745년(영조 21)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어 안해루(按海樓)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했다.

이미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이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 싸웠다.


* 광성보 안 해 루.



* 광 성 돈 대




*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 비 (신미순의총)

*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 손 돌 목 돈대



* 용 두 돈 대 전경

* 용두돈대 가는 길



* 용두돈대 화포



* 손 돌 목


* 광 성 포 대



* 숲길을 넘어서 해안길로 ~


* 멀리보이는 초지대교를 향하여 ~


* 해안가 풍경





* 덕 진 진

원래 덕포진이 강화에 있었는데 1666년(현종 7)에 통진(지금 김포시 대곶면)으로 옮겼다.

그 자리에 덕진진이 설치됐다. 덕진진은 손돌목돈대와 덕진돈대를 관할했다.

숙종 대에 이곳에 덕진정사라는 행궁을 지었다.

이후 행궁이 읍내에 새로 건립되면서 덕진정사는 폐지됐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 공 조 루


* 덕 진 돈 대


* 남 장 포 대



* 경 고 비

조선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전참사가 건립한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있는 비 이다. 정면에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 라고 각인되어 있다.

‘바다의 문을 막고 지켜서, 다른 나라의 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 바다건너 김포 대곶면 대명항

* 초지대교 전 어판장 마을




* 초 지 진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인 초지진은

1656년(효종 7)에 안산에서 옮겨왔다.

초지진에서 초지돈대·장자평돈대·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1875년(고종 12)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패퇴한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영종도를 해코지했다.

이후 초지진은 허물어졌고, 초지진이 관할했던 초지돈대만 남았다.

정비된 초지돈대 안에는 대포가 전시돼 있다.

돈대 옆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포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소나무.


* 초지대교 입구 (오른쪽 건강휴계소 옆이 버스정류장임)


* 모든 추억의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었는데

가슴에 안겨있는 사진속의 당신은 말없이 미소만 짖고있네 ~

마지막 2코스 도착점 초지진에 올라섰다가

당신과 흔적을 남겨두었던 포탄자국이 남아있는 노송을바라보며

다음코스 출발을 위해 도착 스탬프를 ~ 꾸욱 ~


(3월 22일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