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기 옛 길

길손들의 이정표 역할을 한 쌍미륵-의주길 제 3길 쌍미륵길

최윤영(연산동) 2024. 12. 7. 13:29

※ 용미리 마애이블입상 (쌍미륵)

※ 문숙공 윤 관 장군 묘

경기옛길 의주길 - 제 3길 쌍미륵길. 

(의주대로의 이정표. 쌍미륵을 지나는 길)

 

도보구간 : 혜음원지(스탬프)-고산천-용미3리교--용미 3리마을회관-옥미교-용암사(스탬프).쌍미륵-

              서현추모공원-장곡교-분수 2교-최영장군묘(스탬프)-농협하나로마트-신산 5리정류장

도보거리 : 약  16.6km (실 20km) 약 5시간 10분(실 6 시간) - 용암사 와 최영장군묘 둘러본 거리시간 포함.

                  (실  앱의 거리는 14km. 시간은 4시간 30분으로 표기되어 있음) 

교  통 편 : <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3/4번출구 중앙버스정류장(744번 버스)-용미주유소 하차

              > 신산5리버스정류장(744번 버스)-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하차

 의주대로의 이정표, 쌍미륵을 지나는 길

쌍미륵길은 조선시대 의주대로의 78번 도로를 곁에 두고 걷는 길로,

파주의 작은 마을을 지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쌍미륵길에서 만날 수 있는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은

‘쌍미륵’으로 불리는 불상으로 17.4m에 이르는 거대한 석상입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을 지나는 길손들은 쌍미륵을 이정표 삼아 길을 잡았습니다.

오늘날의 길손들 역시 멀리 쌍미륵을 바라보며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용암사에서 머지 않은 곳에서

고려시대의 명장 윤관 장군의 묘를 지날 수 있는데, 기세등등했던 청나라 사신들도

여진족을 물리친 윤관 장군의 묘를 지날 때는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입니다.

 

※ 우측 햬음원지부터 용마 3리까지 도보인데 이어걷기를하며 용진교(녹색)에서부터 시작.(약 0.28km 추가)

         (지난 12월 2일 제 2길 을 끝내면서 혜음원지에서 용미 3리까지 체 3길 추가도보를 하였는데 날씨가 흐렸고

          오늘은 제 2길과 3길의 교차점인 용진교 콩세유미술관 앞에서 이어걷기를 하였는데 날씨가 좋아서 사진의

          밝기 차이가 있으니 이해바랍니다.)

 혜음원지 방문자 센터

※ 파주 혜음원지 (사적 제464호)

혜음원은 개경과 남경 간을 통행하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고려 1122년(예종 17)에 건립된 국립 숙박시설이며, 국왕의 행차에 대비하여 별원도 축조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에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혜음령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하여

그 위치를 추정만 하다가 1999년 주민의 제보로 발굴 조사를 한 결과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가 발견되어 현재 위치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제 3길 쌍미륵길 출발점의 안내판과 스탬프함

※ 해음원지 터를 마주하며 ~

※ 제 3길 진행방향

※ 혜음원지터 데크 전망대

※ 혜음원지 터 전경

※ 이곳 혜음원지 터 에서 나온 기왓장 인듯 ?

※ 혜음원지 둘레길을 따라 ~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

※ 좌측 길을 따라서 ~

※ 운동기구와 정자 쉼터

철책 문 좌측 숲길로 내려설것

※ 지그재그로 숲길을 따라서 ~ (要 注意 - 낙엽이 쌓인 비탈길이여서 미끄럼 주의 요함)

※ 낙엽이 쌓인 길을지나 오솔길 숲을 벗어나야 함

※ 숲길을 나서면서 ~

※ 도로에서 전봇대를 지나 좌측으로 내려서면서 리본과 표지판을 계속 확인할것.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 (계속 주택가 골목길을 돌아 내려야 하기에 주의할것)

※  붉은 건물을 지나서 좌측으로 ~

※ 고산천을 따라서 계속 진행할것

※   제 2길 혜음원지 가는길 교차점 구간인 다리건너 찬이식당과 마주하며 ~

            ( 지난 제 2길 도보때 제 3길용미 3리버스정유장까지가서 끝냈는데 다시 이어가기를하며 한정거장 전인 

             벽제공원묘지 정류장에서 하차 교차점인 용진교 콩세유 미술관앞에서 제 3길을 진행하기 시작 하였음.)

※ 용진교 콩세유 미술관 앞

※ 용미 3교를 건너 횡단보도를 건널것

※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길 교차로 방향으로 ~

※ 교차로에서 좌측길로~

※ 용미 3리 마을회관 앞으로 ~

※ 갈림길에서 삼거리상회 방향으로 ~ ( 이곳부터 용미리 제 1공원길까지 리본과 표지목을 잘 확인할것 )

※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

※ 갈림길 우측 통일석재 방향으로 ~

※ 주택앞 좌측으로 ~ ( 要 注意 - 그냥 지나칠수 있음)

※ 밭 두렁을 따라서 ~

※ 용미리 제1공원길에서 우측으로 ~

※ 곳곳에 방향표지판이 수난을 당하고 있네요 

※ 용미 5교차로 전에 옥미교를 건너 바로 좌측으로 ~

이곳에서 우측으로 ~

※ 도로를 오르기 전에 데크 계단 좌측 방향으로 진행 ~

※ 주택앞 끝부분에서 좌측 농로를 따라서 ~

※ 농가 우측 논두렁을 따라서 두번째 전봇대 우측으로 ~ (논둑 길이 한 두곳 무너져 내려 주의 요) 

※ 주택앞을 지나 누리홀 미술학교에서 횡단보도를 건널것

※ 횡단보도건너 좌측 숲길로 올라설것

※ 묘지 전에 좌측 숲으로 진행할것 (리본 확인)

※ 숲을 빠져나오면 용암사 주차장 임

※ 용 암 사 입구 표지석

※ 용암사 계단옆 제 3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스탬프함

※ 용암사 일주문

※ 용  암 사

경기 파주 광탄 용미리 장지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이절의 창건은 절 뒤에 있는 보물 제93호인 마애블입상(쌍미륵)과 관계가 깊다.

예로부터 이 불상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공양을 바치고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고

믿어 왔기때문에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0년 옛 절터위에 새롭게 중창 하였으며 1979년에

대웅전을 지었다. 1984년에 종각을 짓고 범종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른다.

※ 범 종 각

※ 용암사 대웅보전앞 석가탑과 다보탑 

※ 삼 성 각

※ 쌍 미 륵 (마애이불입상)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보물 제93호)

‘쌍미륵’이라고도 불리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 입상은 대략 11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구전에 따르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합니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맞이한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며 사라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즉시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 한산후가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탄생설화와  연관되어 있는 등

고려시대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용 암 사를 나서면서

※ 횡단보도를 건너 차도를 따라 삼거리까지 가서 좌측으로 들어설것

※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

※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

※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따라서 ~

※ 연화사 느티나무

※ 용미 1리마을회관(건강관리소)앞 정자에서 좌측으로 ~

※ 자그마한 아름다운 정교도 성당

※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

※ 서현공원 추모관 입구

※ 백마교 전에 우측 숲길로 진행하며 고산천을 따라서 ~

※ 은곡교를 건너 다시 은곡길을 따라 ~

※ 장곡교를 건널것

※ 파주 삼릉(공릉. 순릉, 영릉, 조선왕릉 3기) 이야기 판

※ 장곡교를 건너 도로를 따라서 ~

※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

이회 신도비 갈림길

※ 성종 8번째 왕자 익양군 이회 이야기 판

※ 추모공원 선덕원 입구 

※ 분수 2교를 건너 우측 천변을따라 윤관 장군 묘로 ~

※ 윤관 장군묘로 가는 방향

※ 윤 관 장군묘 입구

외 삼 문 (여충문)

제 위치를 찿은 제3길 스탬프함과 윤관장군 이야기 판

( 흰 페인트칠이 엉성하네요)

 여(려)충사 표지석

윤시중 전마총외 좌측에 교자총도 있음

홍살문 넘어로 윤관 장군 묘

※ 윤 관 장군 묘 (사적 제323호)

고려중기 문신인 윤관(?~1111)은 문무를 겸비한 고려의 공신으로 1104년(숙종 9)에

여진 정벌을 위해 별무반을 편성하고 1107년(예종 2)에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습니다.

한때 윤관장군의 무덤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조선 1747년(영조 23)

후손들이지금의 자리임을 주장하여 1764년(영조 40)에 공인되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명당으로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간에 400년간 지속된

산송 분쟁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쟁은 2008년 심지원 묘를 비롯한 청송 심씨 묘

19기 모두를 이전하면서 조상묘 다툼이 해결되었습니다.

 

※ 문숙공 윤관장군 신도비외 좌측에 대원수 사적비도 있음

※ 재 실

※ 윤 관 장군 묘 전경

※ 윤 관 장군 묘

※ 여(려) 충 사

※ 내 삼 문 (진국문)

※ 기 념 관 (충효관)

※ 윤관 대원사 숭모詩碑 공원

※ 윤 관 장군 묘역을 나서며 ~

※ 오던 길을 되돌아서 분수 2교로 원점회귀후 분수천을 따라서 ~

※ 광탄행정복지센터

※ 파주 3.1운동의 발상지 광탄 이야기판

※ 잠시 분수천교 에서 도로를 건너 신산1교 데크길 입구까지 ~

※ 데크길을 따라 신산 3교-2교를 지나 ~

※ 광신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농협 하나로마트 옆길로 ~

※ 새 술 막 교 

※ 신탄막 (새술막)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울 피해 의주로 향하던 선조의 피난길은 여간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마을 주막거리에서 쉬어가던 피난 일행은 갑작스런 비때문에

불을 피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아껴쓰던 숯을 가져온 덕에

비로서, 불을피워 젖은 몸을 말릴수 있었습니다.

이를 본 선조 임금이 이 숯은 처음보는 새로운 탄(炭)이라 하여

그때부터 이마을 이름을 `신탄(新炭)` 또는 `새술막`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선조가 이름지어준 산탄막 이여기 판

※ 외화산교를 건너 마지막 도착점 신산 5리 버스정류장으로 ~

※ 신산 5리(광탄어린집) 삼거리

※ 제 3길 쌍미륵길의 도착점

※ 재 4길 파주고을길 방향

※ 신산 5리 버스정류장

영하의 날씨로 시작하는 아침. 제 3길 쌍미륵길을 다녀오기 위해 밖으로 나서니

초겨울의 날씨답게 찬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지만 맑은 날씨덕에 아직은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기에 상쾌한 기분으로 버스를 이용 혜음령터널을 지나 지난 제2길 도보를 끝내면서 

혜음원지에서 용미 3리 정류장까지는 제 3길 일부구간 추가 도보를 하였기에 이어가기를 하려고

용마 3리 한정거장 전인 용미리묘지입구에 내려  제 2길과 3길의 교차점인 용진교

콩세유 미술관 앞에서 출발하며 고산천을 따라 용미 3교에 도착 횡단보도를건너 교차로에서

 

용미3리 마을회관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가며 석재조경 공단지역을 돌아나와서

용미리 제 1공원 묘지로 오르는 명봉산로로 나선후 우측 도로를 따라서 용미 5교차로 입구로

향하며 옥미교를건너 교차로전에 바로 좌측길을 따라서 다시 다가구 건물을 지나면서

혜음로 도로 밑에서 밭두렁과 논두렁을 돌아 주택앞을지나 누리홀 자연미술학교 앞 횡단 보도를

건너 숲길로 올라선후 묘지앞 좌측 숲사이길로 들어선후 낙엽이쌓인 숲길을벗어나

용암사 주차장으로 내려서며 제 3길 스탬프를찍은후 계단을 올라서 일주문을 통과 범종각과

 

대웅보전을 마주하며 석가탑과 다보탑을 둘러본후 의주길의 이정표라 불리우는

용미리 마애이블입상인 쌍미륵을 보려고 약사여래불 옆 계단을 따라올라 쌍미륵을 마주한후

다시 돌아내려 용미 1리 교차로에서 한민고입구 갈림길 좌측으로 따라가며 느티나무가

아름답게 비쳐지는 연화사를거쳐 용미 1리 마을회관앞 정자를돌아 파주 행복요앙원 입구를 지나

작은 정교도성당에 멈추어 섰다 명봉산로로 나서며 도로공사중인 서현추모공원앞을

벗어나 백마교를 건너기전 우측 숲길로 들어서며 고산천을 따라서 은곡교를 건너선후 다시

 

공장지역인 은곡길을 따라가며 한참을지나서 장곡교를건너 사거리전 우측으로

고개 길을따라 이화신도비 입구를지나 고개를 넘어서며 공단지역을 벗어나 분수 2교를 건너

윤관장군묘를 다녀오기위해 우측 둑방길을 따라오르다 갈림길에서 혜음로를 건너서며

주차장 여충문옆 제자리를찿은 스탬프함을 확인후 곳곳을 둘러본후 윤관장군묘에올라 참배한후

돌아내려 장군묘억을 떠나 분수교로 되돌아와 분수천옆 벚꽃나무 데크길을 지나서

광신교를건너 새술막교지나 외화산교를건너 도착점인 신산 5리 어린이집에 도착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