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동산행기(1)

09.06.06. 미지산으로 불리던 40년만에 개방된정상-용문산

최윤영(연산동) 2017. 6. 13. 15:21


용 문 산 (1157 m) -09.06.06.

 

경기 양평 용문.

산행구간 : 용문사-용각골-마당바위-절고개능선-신선바위-정상-절고개-용문사

산행시간 : 약 6 시간 (산행거리 : 약 10 km)

입 장  료 : 1.800원(대인기준)

교 통  편 : 동서울(08:40/14:40-2회운행6.900원)-용문사행. * 1시간 20분소요.

                상   봉(09:20/13:20-2회운행6.900원)-용문사행.   

                또는 양평이나 용문에서(5700원)-용문사행(1.000원) * 시간 사진참조

 

옛부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워질 만큼 기암괴석과 고산 준령을 고루 갖춘 경관이 뛰어난

산이며 경기도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으로 미지산(彌智山)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조선

을 개국이태조가 등극하면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용 문 산".

 

(또한 신라때 용문사가 창건되면서 미지산으로 불리어오다 일제때 일인들이 5만분지1 지도

를 만들때 멋대로 용문산으로 고친이래 그대로 불려오고 있다고도 함.) 

 

신라 선덕여왕 2년(913년)에 대경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용 문 사 와 용문산을 대표

하는 수령이1100~1300년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오래된 천연기념물 제30호

의 높이62m, 둘레14m에 달하는 용문산이나 용문사보다도 더유명한 은 행 나 무.

 

(이 나무에는 두가지의 전설이 전해진다.하나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았더니 뿌리가내려 자라난 것이라는 전설과 신라의 마지막왕자인 마의태자가 망국

서러움을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은행나무를 한 그루 심은 것이 이

나무라는 전설이다.)

 

 

현충일 아침. 지난 40여년간 용문산정상이 군부대 지역으로 인하여 산악인들의 접근이 불

능 하였으나 지난해 11월부터 부분적으로 정상이 개방되어 아침 08:30부터 저녁 17:00까지 

정상을 개방을 하였다는 용문산으로 정상탐방 산행을 떠나는 일행 부부와 함께

 

공휴일이자 주말인탓에 남한강을 따라오르는 6번국도가 계속정체되는 가운데 3시간 여만

사 주차장에 멈추어서니 예전과 달리 용문 단지내 국민 관광지답게 각종 편의시설이 잘

조성된 공원의 분위기가 발길을 멈추게 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하고 있다.

 

공원을 벗어나 숲길 터널을 이루는 도로를 따라오르는 길옆으로 맑은 물을 흘러 내리게하여

피로의 발걸음을 풀어낼수 있는 작은 공양이 아닐까 싶은 마음으로 일주문을 벗어나 수많은

관광객들과 어울려 용문산을 대표하는 은행나무앞에서 흔적을 남기면서

 

용문사 경내를 둘러보고 산행 시간을 고려하여 용문봉으로 오르려던 계획을 바꾸어 절 고개

등산로 숲길로 들어서니 계곡을 따라 오를수록 골이 깊고 수목이 창하여 심산유곡을 방불

케하는 용각골 계곡사이로 작은 폭포와 소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소리 벗삼아 쉬엄쉬엄 오르는 계곡의 위험 구간마다 새롭게 놓여진 철다리를 지 

오르며 바위 사잇길과 너덜지대를 지나기도 하면서 더위로 인하여 자주 멈추어 땀을 흠치

시간이 잦아지는 가운데 서너번씩 계곡의 다리를 넘나들고 오르는 동안  

 

계곡이 깊어지며 숲속으로 비쳐지는 협곡을 가로지르듯 놓여진 콰이강 의 다리를 연상케 하

는 높은 다리위에 멈추어 주위풍경에 감탄하면서 지친 피로를 풀어내고 잠시후 커다란 바위

가 계곡을 막아서는  2미터 높이의 용문산의 명물 마당바위가 마중하는

 

넓은 바위로 올라서니 2~30여명은 족히 머물수있는 타원형의 평평한 바위가 쉼터를 제공

기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측 너덜길을 올라 마지막 다리를 건너서니 이곳부터는 아주가파

른 너덜길의 로프난간 등로를 따라 올라야하는 힘든 구간인듯 싶다.

 

때늦은 허기를 채우기위해 계곡의 물소리도 멀어져버린 힘든발걸음을 멈춘채 물기없는곳

자리를펴고 휴식을 취하는동안 웃옷을 걸치게하며 손까지시리울정도로 차디찬 기운이 땅속

에서 솟아나며 더위를 싸악 ~ 잊게하는 자연 냉방 숲속을 벗어나

 

조금은 위험하고 가파른 길을 로프를 잡고 돌아오르니 몇몇 등산객이 휴식을 취하고있는

고개 능선과 마주하는 갈림길 쉼터에서 숨을 고르며 고도계를 살펴도 정상은 아직 멀기만하

듯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왜이리 발걸음이 무거운지~

 

능선길은 갖가지 바위와어울린 암능선을 이루기도하고 위험구간은 계단이 설치되어 쉽게

를수 있지만 배앓이 이후 더딘 발걸음은 그래도 석 문에 올라 용 문 산세를 둘러보는 여유

주위 경관에 위로를 받으며 정상으로 향하는 암능선을 따라오르며

 

신선바위를 지나 마지막 철 계단을 올라 팔각 정자와 전망대가 마중하는 정상으로 올라서서

개방으로 인하여 통신탑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정상석앞에 멈추어서니    "용 문 산-1157 m"

시간 제한이 있는 좁은 공간인 정상에 오래 머물수 없기에 흔적을 남기고

 

전망대로 내려서서 예전에 한두번씩 오르내린 용문산 정상을 중심으로 동으로 폭 산에서

일봉. 중원산과 국사봉. 백운봉으로 부채살처럼 이어지는 주위산세를 둘러보며 龍과 연관

지어보지만  왜 ? 龍 門이라 불리게 되었을까는 ~

 

몇몇 등산객이 머물고있는 정상을 내려서며 힘겹게 오르던 때와 달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개로 향하면서 멀리서만 바라보던 용문산 정상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하나의 흔적

남기고 안전산행을한 일행과 함께 어두움속에 용문 단지를 벗어나고있다. 



 

* 용 문 사 은행나무의 전설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나이가 약 1,1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 미터에

줄기의 둘레가 12.3m을 넘어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이 은행나무는 암나무이며, 줄기 아랫부분에 큰혹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 하며,
또한 마의태자가 나라를잃은 설움을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 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의병의 본거지라 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 하여 천왕목이라고 도 불렀고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의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 받기도 한 명목이다.

이 나무에는 또한 전설이 있다.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

하며 또한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사변 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