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동산행기(1)

09.11.25.운해가파도치듯 넘실대는 환상의파노라마-예산 가야산

최윤영(연산동) 2017. 6. 16. 13:29


예산 가 야 산 (677.6 m) -09.11.25.

 

충남 예산 덕산. 서산 해미.

산행구간 : 주차장-남연군묘-관음전-옥양봉-석문봉-암봉-가야봉-저수지-남연군묘

산행시간 : 약 5 시간 널널산행 (산행거리 : 약 8 km)

산행인원 : 우리산내음 23 명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덕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예산군 과 당진군, 서산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당당하게 우뚝솟아난 금북정맥상에 자리한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605m),

석문봉(653m),옥양봉(621m)으로 이어지는 능선상기암과 암릉이 곳곳에 산재있으

정상에는 통신시설과 중계탑이 있는 일명 가사봉이라 불리는 가 야 산.

 

정상은 출입금지로 올라갈수가 없으므로 예부터 이곳 주민들은 석문봉을 주봉으로 생각해

오고 있는데 실인즉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와 가야사 터에 맥을 대고있는 봉이 바로

석문봉이기 때문이아닐까 ? 싶은 석문봉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 중계탑과 원효으로 이어

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동쪽로는 옥양봉이

 

북 서쪽으로는 일락산이 바라다 보이고 서쪽으로는 해미면 일대와 서해바다가 원스럽게

내려다보이며 사방으로 탁트여 시원스러운 조망이 펼지는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내고있는 가야산으로 정기산행을 떠나는 우리산내음 23인을 태운 우등

버스가 상가리 주차장에 멈추어서니 행담도에서부터 쏟아지며

 

차창을 두드리던 굵은 빗방울이 언제였나싶게 주위산세를 안개에 묻어버리니 뜻밖에 예산

송영택 부부님의 마중을받는 반가움에 내리던 비까지 환영을 해주는듯 오랫만의 만남으로

인사를 나누고 안개속의 옥양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후 아는길도 물어가라 했던가 ? 상가

리 마을회관을 돌아오르는 잘못된 판단으로 잠시 멈칫하는 해프닝을  ~ 

 

도로공사중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남연군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오르는 등로를 따라오

르며 두번째 갈림길 숲길로 들어서니 촉촉히 물기머금은 낙엽이씻기어 붉은빛의 카펫을밟

고 오르는 기분으로 안개속에 드리어진 싱그로운 숲속을따라 오르는데 누군가 부르는소리

에 돌아보니 후배님과 산하를 누비고 다니시는 korkims 님과 우연한 만남이

  

생각지도 못한 이곳에서 만날수있다는 반가움에 함께 추억의 흔적을남기고 쉬엄쉬엄 내딛

는 발걸음이 옥양봉밑에 고즈녁히 자리한 관음전에올라 숨을돌리고 숲길 계단을따라 암능  

바위 전망대위로 올라서니 구름바다위에 범선 한척이 떠있듯 가야봉을 둘러싸고 파도치듯

넘실대는 운해가 장관을 이루며 솟아오르는 환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탄성을 자아내도록 시시각각 변해가며그려대는 자연의 신비를 화폭에 담아 내

려 연신 셧터를눌러대고 암봉위 옥양봉위로 올라서니 거센파도가 지나간 바닷가의 풍경처

럼 잔잔하게 느껴지는 엷은 운해가 깔려있고 머-언 산넘어로 아직도 구름 바다위에 떠있는

운해가 점점이 섬을 만들어 놓은 진풍경이 아직도 비쳐지는

  

옥양봉의 암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우측으로 해미면과 좌측으로 덕산면을 사이에 두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즐거움으로 완만한 능선 길을따라 두어번의 갈림길을 지나치는 동안

어느덧 태극깃발이 펄럭이는 암봉아래 자리를마련하고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정상

으로 돌아오르니 백두대간 종주기념돌탑과 암봉위에 정상석이 마중하는 석 문 봉.

  

가야봉 정상일대가 출입이 통제되어 정상을 대신하고 있는 석문봉을 기점으로 산행구간은

단조로운 편이나 산 주위에 문화유적이 산재해있어 사적탐방을 겸한 가족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석문봉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흔적을 남기고 가야봉으로 가기위하여 내려서

는 능선이 이제까지와 달리 아기자기한 암 능선으로 이어지며

  

바위사이를 오르내리는 또다른 재미로 산행의 묘미를 느끼면서 암봉위로 올라서니 석문봉

가야봉의 중간쯤에 불쑥 솟아있는 599암봉. 멀게만 느껴지던 통신탑과 중계탑을 마주하며 

빗물로 인하여 미끄러운 위험한 암릉구간을 안전하게 벗어나 철조망이 둘러쳐저있는 정상

을 돌아내리며 헬기장으로의 구간을 접고 계곡으로 내려서고 있다.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가파른 등로를따라서 자칫 미끄러질까 조심스럽게 더딘 발걸음으로

너덜길을 벗어나 낙엽이 깔려있는 숲길을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제철을잊은 진달래 개나리

가 피어난 상가저수지의 제방길옆의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는데 아산의 이상일님께서 바

쁘신중에도 이곳까지 오셔서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는 친절에 감사하며

  

남연군묘에 올라서서 멀리돌아온 가야산세를 다시한번 둘러보는 것으로 산행의 끝을 접으

며 모두가 안전산행 할수있었음에 감사하며 주차장으로 다가서니 산행전에 반갑게 맞이하

셨던 예산의 송영택님. korkims님.아산의 이상일님 그리고 우리산내음23인모두가 한자리

에 모여 막걸리잔을 나누는 즐거움으로 산행의 기쁨이 배가되듯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채 산행계획의 일부인 밀물과 썰물때 섬과육지로 변화되는

보기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함께 바다위로 달이

떠올랐을때의 경관이 빼어나다는 간월암에도착 우중 산행의 염려가 환상적인 운해로 감탄

하였듯이 또한번 간월암에서 서해의 낙조를 즐기는 최상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 남 연 군 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무덤이다.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가에게 명당을 찾아줄것을 부탁하였는데 풍수가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이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헌종 10년(1844년)에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부순후에 묘를 썼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보덕사라는 절을지어 도문을 초대 주지로 삼은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리고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조선과의 통상 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크게 노한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 탄압을 가종시켰다.


* 간 월 암의 유 래

간월암은 과거 피안도. 피안사로 불리며 밀물시 물위에 떠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 또는 낙가산. 원통대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중 달을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쳣다 하여

이름을 간월암 이라 하고 섬이름도 간월도라 하였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