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나들길 1코스 표지목


* 연 미 정 에서


강화나들길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 -19.11.02.

(강화버스터미널-갑곶돈대)


도보구간 : 강화버스터미널-동 문-성공회강화성당-용흥궁-고려궁지-북관제묘-강화향교

               은수물-북 문-북장대-오읍약수-연미정-옥개방죽-갑곶성지-갑곶돈대

도보거리 : 약 18 Km (탐방시간 : 6시간 예상/실 0시간 0분 소요)

교 통  편 : > 2호선 합정역 중앙승차장(좌석3000번 강화직행)

               < 갑곶돈대-강화터미널 (순환버스 5 /6번) -(좌석3000번신촌직행)




고려시대의 임시수도로서 도서지역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강화산성, 고려궁지, 용흥궁, 강화성공회한옥성당과 아늑한 대산마을 벌판을 보며

연미정으로 가는길은 옛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고향같은 길


* 강화버스터미널

* 출발에 앞서

           




* 누군가 표시해놓은 견자산 정상


* 충 혼 탑






* 강화중학교 전경

* 동 문 (망한루)



* 회 나 무






* 성공회 강화성당

1900년에 한옥으로 지어진 대한성공회 성당이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고요한(Corfe,C.J.)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강화성당은 서유럽의 바실리카(Basilica)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성당의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서쪽에 출입문을 두어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船)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성당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 사 제 관




* 용 흥 궁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

철종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元範)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1844년(헌종 10) 회평군(懷平君)의 옥사에 연루되어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로 살았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 옛 심도직물 터의 직조기












* 고 려 궁 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고종 19)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원종 11)까지 38년간 사용되던 고려궁궐터이다

강화의 궁궐은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이 업무를 보던 이방청 등 조선시대 유적만 남아있다.


* 고려궁지 입구 승평문


* 강화유수부 동헌 (명위헌)


* 외 규 장 각

* 강화부 종각

* 이 방 청

* 북 관 제 묘

* 강화여자고등학교



* 강 화 향 교

강화향교는 고려 1127년(인종 5) 내가면 고천리(고읍)에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1232년(고종 19) 강화읍 갑곶리(먹절)로 옮겼다가 1259년(고종 46)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고,

조선 1642년(인조 2)에는 유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겼다고 한다.

1627년(인조 7)에는 유수 이안눌(李安訥)이 대성전에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688년(숙종 14)에 유수 민시중(閔蓍重)이 남문 근처로 이건하였다.

1731년(영조 7)에는 유수 유척기(兪拓基)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766년에 유수 이은(李?)이 중수함과 동시에 소동문 밖에 있던 비석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 은 수 물









* 북 문 (진송루)




* 대산리 벌판넘어황해도 개풍군

* 북장대 터에서

* 강화나들길 1코스 표지목



* 산성 1코스 오읍약수터 갈림길

* 오읍약수터로 내려서며 ~




* 오읍 약수터




* 대산리 침례교회


* 대산 2리 마을회관











* 할머니 식당





* 연미정 입구

* 월 곶 돈 대 (황형택지)



* 연 미 정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한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 김포 문 수 산




* 조 해 루





* 옥 개 방 죽



* 옥개방죽의 물옥잠


* 옥림리 벌판에서 ~













* 6.25 참전국 기념비

* 6.25참전 기념공원







* 갑곶 순교성지 입구


* 그리스도 像





* 현. 페쇄된 강화교.



* 예전 다리를 건너 강화로 통하던 관문의 흔적.

* 갑곶돈대. 강화전쟁박물관 입구

* 세계금속활자발상 중흥기념비

* 비 석 군

* 강화 전쟁박물관


* 갑곶리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8호. 약 00년수령)


* 갑곶돈대안의 대포 (진품)

* 이 섭 정

* 2코스 호국돈대길 해안끝 더리미 선착장을 향해 ~


* 갑 곶 돈 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 갑 곶 돈 대

* 바다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


* 강화나들길 2코스 출발점 스탬프함.

*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비


* 에 필 로 그

서울둘레길 5기 길동무팀과 강화나들길 동행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 강화

 터미널에 도착 15인의 길동무님들과 1코스 심도문화유적길을

시작으로 20코스 대장정의 출발을위해 견자산으로 발길을 옮기며 방화선

  능선을따라 충혼탑에 올라서 흔적을남기고 동문으로 내려서며

 강화중학교와 마주하는 동문 망한루을 돌아 옛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나무를지나 성공회 강화성당을 둘러보고 용흥궁을 거치면서

  옛 심도직물터 주차장에서 문화관광해설사님과 인사를나누고 고려궁지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며 회환이 서린다고나 할까 ? 나만의 추억을

 잠시 꺼내보이고~ 북관제묘와 강화여고 입구를지나 강화향교를 벗어나며

   은수물에 도착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숲길로 들어서고 있다.


산성 갈림길에서 숲속으로 줄지어 걷는동안 북문 진송루에 도착하니 공사

중이여서 전경을 볼수없기에 성곽을따라 북장대터에 올라서니

바다건너 개풍군은 해무로인해 흐릿하지만 가깝게 바라볼수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성곽을 내려서며 주위를둘러봐도 아직은 이곳숲속도

을이 멈추어서 있기는 마찬가지 ~ 오읍약수터를 찿아가 목을 축인후에

대산리를 벗어나 잠시 숲길을따라 월곡리로 내려서며 연미정을

오르기전 할머니 식당에서 시골밥상 차림으로 포만감에 커피대신 구수한

숭늉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월곶진 연미정으로 올라서니 지난번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한그루 느티나무가 부러져 무언가허전하고 쓸쓸한

연미정에서 단체로 흔적을 남기고 돌아내리며 조해루 철책선옆

옥계방죽을 따라 옥림리 들판을 가로지르며 다시산길을 넘어서서 공단길

해안도로를따라 갑곶순교성지에 도착하여 갑곶돈대를 둘러보며

강화나들길 심도역사문화길을 끝내며 길동무의 첫행보를 자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