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길 세종효종길의 출발점
※ 제 7길 문화체험 참석자 단체사진
경기옛길 봉화길 - 제 7길 세종효종길.
(영릉을 참배하기위해 임금이 걸었던 거둥길)
도보구간 : 세종대왕릉역-이인손묘-번도4리-세종대왕기념관-세종산림욕장(스탬프함)- 문화체험 도착구간 임.
(추가도보) 산림욕장 정상-소양천-대로사-여주5일장(중앙로)-여주향교-여주역
도보거리 : 약11km (실 12km) / 시간:4시간 10분(실 5시간 30분)
교 통 편 : < 지하철 2호선 강남역-(신분당선 환승)-판교역(겅강선)-세종대왕릉역
> 경강선 여주역-판교역(신분당선 환승)-지하철 2호선 강남역
영릉(寧陵)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이 걸었던 거둥길
거둥길은 왕이 선대왕의 능에서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오가던 능행길을 말합니 다.
여주에는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제 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효종대왕의 북벌 에 대한 의지를 느껴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효종대왕을
참배하기 위해 수 많은 임금이 걸었던 길을 생각하며,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 제 7길의 출벌점인 세종대왕릉 역
※ 참석 인원명단및 조편성 확인
※ 출발에 앞서 대기중
※ 출 ~ 발
※ 4조 조장을 선두로 ~
※ 좌측 여주능 서역세권 주택단지 조성지
※ 중부내륙 고속도로 밑을통과
※ 충희공 이인손 묘 가는 길
※ 충희공 이인손 묘 (퍼 옮)
※ 충희공 이인손
충희공 이인손(1395~1463)은 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윤(仲胤)
호는 풍애(楓厓)이다.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손자이자 형조참의를 지낸 이지직(李之直)의 아들이다.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에 등용되고, 이어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1429년(세종 1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明)에 다녀온 후 형조좌랑과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후에 호조판서 판중추부사와 좌찬성을거쳐 1469년(세조 5)우의정에오른뒤 곧 치사하였다
※ 변도4리 들판을 지나며 ~
※ 이곳에서 기념품을 받고 제주 보말칼국수로 점심을 ~
※ 따끈한 제주 보말 칼국수
※ 영릉으로 넘어가는 대왕로 고개길
※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 세종대왕릉 입구 로터리
※ 4조 기념촬영
※ 세종대왕릉 버스정류장
※ 세종교 도로 건너 좌측으로 ~
※ 산림욕장 입구 스탬프함 (문화체험 7구간 도착점)
※ 겸 품 추 첨
※ 옛길따라만나는 문화체험 7길을 끝내면서 단체 기념촬영
※ 문화체험 7길을 끝내고 남은구간을 걷기위해 출발전 기념촬영
※ 여주역으로 출 ~발
※ 산림욕장 정상의 여강길 스탬프함
※ 정상의 팔각정자 전망대
※ 여 강 방향으로 내려서며 산림욕장 입구의 쉼터
※ 여 강을 바라보며 ~
※ 여 강
※ 여 강 상류 방향 ~
※ 세종대교 밑을 통과
※ 하리보교 를건너 좌측 강변길을 따라서 ~
※세 종 대 교
※ 청 심 루 터
※ 청 심 루 터
청심루는 여주읍 창리에 있는 여주초등학교 건물 바로 뒤편에 있었던 누정으로,
여주 관아의 객사 북쪽에 있는 부속 건물이었다. 해방 전까지도 관상목이 많이 있어 고색창연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하나 1945년 군수 관사의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그 터에 1987년 경기도에서 ‘청심루터’ 표석을 세웠다. 여주는 경관이
아름다워 일찍부터 강변을 따라 여러 곳에 누정이 세워졌다.
그중에서 여주 관아의 객사였던 청심루가 가장 유명했다. 청심루에서 바라보는 신륵사의 다층전탑이
아득히 보이고 서쪽으로 영릉의 울창한 송림과 강 아래로 오고가는 돛단배들이 그림처럼
전개되는 등 ‘여주팔경’의 경관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 대 로 사
※ 대 로 사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명신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정조 9년(1785) 왕이 세종대왕릉,효종대왕릉에 참배하러 왔다가 여주의 유림들과 경기 유생 정운기의
건의를 받자 김양행등 유신에게 명하여 건립하게 하고 대로사(大老祠)라 사액하였다 .
이후 대원군 이하응이 득세하자 그에게 ‘대로大老’라는 호칭을 붙이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조선에 ‘대로’가
두 사람일 수 없다며 고종 10년(1873) 10월 대로사를 강한사라 개칭하였다.
※ 우암 송시열을 모신 사당
※ 추 양 제
※ 여주 5일장
여주장이 정확히 언제부터 열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고려시대부터
생활필수품을 거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이 선 것으로 추정된다.
전형적인 재래 5일장으로, 인근의 천령장(이포장)· 억억장(흥천장)과 함께 여주 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기고, 가장 번성하였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전통 5일장 형태를 갖고
서는 장중에 가장 큰 장이다. (매월 5·10·15·25·30일)
※ 하리 교차로
※ 향교로를 따라서 ~
※ 여 주 향 교 -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하였음
※ 여 주 향 교(驪州鄕校)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상리(上里)인 마암(馬巖) 근처에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홍문리에 중건하였으며, 이후부터 이 마을 주민의 희생자가 많아져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5칸의 동재(東齋), 내삼문(內三門),
각 8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등이 있다. 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 명 륜 당
※ 돌담 밖에서 바라본 대성전
※ 멀리서 바라본 향교 전경
※ 제7길 세종효령길 도착점 여 주 역.
※ 여주역 관광안내소
※ 봉화길 제7길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밤사이 기온이 떨어지며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지만 영하 5-6도에 한파
주의보까지 내려진 가운데 오늘은 옛길따라 만나는 문화체험 제 7길 세종효종길을
걷기위해 어제까지와 달리 고아텍스 쟈켓을 걸치고 밖으로 나서니 쌀쌀한
바람이 볼을스치지만 손이시려울 정도는 아니기에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에는 좋은
날씨인듯 싶은데 일부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기 힘든지 얼음판에 딩굴러도
끄떡없을옷차림이 영하10도이상의 날씨에는 어떻게견딜까 싶은생각으로
지난 제 5길의 교통편과 같은시간에 맞추어 함께 동행한 일행과 판교역에서 환승해
세종대왕릉역에 내려서니 추위속에 예상보다 많은참석자들이 도착해있고
명단을확인하니 4조에 편성되있어 진행하다보니 함께동행하던 분들과도 흩어져서
조별로 출발하며 여강길과 중복 구간인 철길 옆길을 따라가는데 좌측으로
불모지라 생각했던곳이 단지조성 구획정리가 끝나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싶은 생각으로 중부내륙 고속도로밑을 통과한후 샛길을따라
충희공 이인손묘 사당앞에 잠시머문후 번도4리 마을을지나 중부대로옆의
제주보말 칼국수집앞 공터에 마련한 중간지점에서 기념품과 따끈한 보말칼국수로
몸을녹이고 다시 숲길도로를 따라 영릉으로가는 대왕로 고개를 넘어서며
세종대왕릉교차로에서 잠시머물다 세종교를건너 제 7길도착점 산림욕장
입구로 다가선후 경품추첨을 끝으로 단체촬영후 세종효종길 문화체험을 끝내면서
남은구간 이어가기위해 함께동행할 17인이 산림욕장 게이트를 통과하며
숲길을따라 정상의 팔각정자 전망대에올라 주위를 둘러본후 로프난간을 돌아내려
여강길을따라 세종교 밑을통과 하리보교건너 강변로를따라 청심루 터를
확인하고 우암송시열을 모신사당 대로사를 둘러본후 가는날이 장날이라
여주5일장을지나 하리교차로에서 소양천교를건너 갈대가 하늘거리는 소양천데크
길을벗어나 모처럼 찿어간 여주향교가 문이굳게 닫혀있어 돌아나오면서
향교교를건너 교동로를따라 여주역에 도착하면서 봉화길 제 7길을 세종효종길을
즐거운마음으로 함께 동행해준 17인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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